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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타 모리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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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키타 모리스에는 1620년 아키타 토시스에의 장남으로 태어난 인물이다. 1641년 종5위하 아와노카미에 서임되었으며, 1649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오사카성 가반을 이어받고 미하루성 성주가 되었다. 그는 가신들을 기용하여 번제의 정비와 재정 재건에 힘썼으며, 1675년 오사카성 번을 맡았다. 1676년 오사카성에서 사망했으며, 차남 아키타 테루스에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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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타 모리스에
기본 정보
씨명아키타 씨
이름아키타 모리스에
아키타 모리스에
시대에도 시대 전기
출생겐나 6년 (1620년)
사망엔포 4년 1월 13일 (1676년2월 26일)
개명구마쓰, 모리스에
이명사콘
계명요운인덴 류텐소마쓰
묘소후쿠시마현다무라군미하루마치 아라마치의 고겐인, 고야산
관위종5위하, 아와노카미
막부에도 막부 오사카성 가반
주군도쿠가와 이에미쓰, 이에쓰나
무쓰국미하루번 번주
씨족아키타 씨
부모아버지: 아키타 도시스에, 어머니: 에이주인 (마쓰다이라 노부요시의 딸)
형제자매모리스에, 여자, 스에히사, 여자 (신조 나오나가의 부인), 여자 (우에무라 다다토모의 부인), 남자, 여자
배우자정실: 쇼주인 (안도 시게나가의 딸)
자녀남자, 여자 (이토 스케자네의 부인), 여자, 데루스에, 남자, 여자, 남자, 양녀 (사지 가즈나리의 딸, 고이데 시게카타의 부인)
정치 경력
전임아키타 도시스에
후임아키타 데루스에
직책미하루번 번주 (아키타 가문)
대수2
임기1649년 ~ 1676년

2. 약력

1620년 아키타 토시스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히사마츠(久松일본어)였으며, 이후 사콘(左近일본어)이라 칭했다. 원복 후에는 선조의 이름인 모리스에(盛季일본어)를 사용했다.

1641년 종5위하 아와노카미에 서임되었다. 1649년 아버지 토시스에가 사망하자 가문을 계승하여 미하루 번주가 되었다. 이후 슨푸성오사카성의 가반을 역임했으며, 번의 제도 정비와 재정 재건에 힘썼다.

1676년 오사카성에서 병사했으며, 차남 아키타 테루스에가 뒤를 이었다.

2. 1. 출생과 가문 계승

겐나 6년(1620년), 아키타 토시스에의 장남으로 시시도성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히타치국 츠치우라성 성주인 마츠다이라 노부요시의 딸이다. 어릴 적 이름은 히사마츠였으며, 이후 사콘이라고 칭했다. 원복을 치른 후에는 선조의 이름인 모리스에를 사용했다.

간에이 18년(1641년) 12월 29일, 종5위하 아와노카미에 서임되었다.

게이안 원년(1648년) 12월에는 아버지 토시스에의 병간호를 위해 오사카로 갔다. 이듬해인 게이안 2년(1649년) 1월, 아버지가 오사카성에서 병으로 사망하자 오사카성 가반 직책을 이어받았다. 같은 해 5월 14일에는 아버지의 유령(遺領) 5만 석을 상속받아 미하루성 성주가 되었다. 이때 동생 스에히사에게 유령 중 5천 석을 나누어 주었다(분지).

2. 2. 막부 요직 역임

간에이 18년(1641년) 12월 29일, 종5위하아와노카미에 서임되었다.

게이안 2년(1649년) 1월, 아버지가 오사카성에서 병사하자 오사카성 가반을 이어받았다.

게이안 3년(1650년)부터 같은 해 4년(1651년)까지 슨푸성 가반을 맡았으며, 이때 유이 쇼세츠의 난이 일어났다.

엔포 3년(1675년), 오사카성 번(番)을 맡았다.

엔포 4년(1676년) 1월 13일, 오사카성 안에서 병사했다.

2. 3. 번정 개혁

가신 아키타 시로베에와 오노데라 타자에몬을 기용하여, 번의 제도 정비와 재정 재건에 힘썼다. 또한, 조부 사네스에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아키타 씨와 관련된 고시왕을 권청하고, 벳토 신조지 절에 많은 불상과 불화를 기진했다.

2. 4. 사망

엔포 3년(1675년), 오사카성 번(番)을 맡았다.

엔포 4년(1676년) 1월 13일, 오사카성 안에서 병사했다. 향년 57세였다.

법명은 요운인덴 류텐소마츠(陽運院殿龍天宗松)이다.

고야산에 묻혔다.

차남인 아키타 테루스에가 뒤를 이었다.

3. 일화

병약하고 소심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개인에 관한 일화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가을밤의 꿈 이야기』(개인 소장)에 몇 가지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1]

3. 1. 메이레키 대화재

병약하고 소심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개인에 관한 일화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가을밤의 꿈 이야기』(개인 소장)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1]

: 메이레키 3년(1657년)의 대화재 때, 에도에 있던 모리스에는 곧바로 가신 아키타 덴나이를 에도성으로 파견했다. 그때, 시라카와 성주 마쓰다이라 엣추노카미(이 해의 시라카와 번주는 혼다 타다요시이므로 사적으로는 오류)는 에도성에 있었지만, 모리스에의 가신이 등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저택보다 12리나 먼 곳에 저택이 있는 모리스에에게 선수를 빼앗겨 분하다"며 격노했다.

:

: 그로부터 수년 후, 모리스에가 오사카 가반으로 상경하는 도중, 이세국 쿠와나에 하룻밤 묵었다. 이때 쿠와나 번주는 시라카와에서 쿠와나로 전봉된 마쓰다이라 엣추노카미 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때, 마침 쿠와나에서 화재가 일어나자 엣추노카미는 쿠와나 성의 망루에 올라 모리스에와 그 가신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려 했다. 그러나 모리스에의 행렬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연기 속을 조용히 지나 안전한 장소에서 행렬을 멈춘 뒤 모리스에는 족경 2조를 쿠와나 성으로 보내 엣추노카미에게 "성 아래에 화재가 발생했고, 바람도 거세어 성이 위태롭게 보이므로 가신을 보냈습니다"라고 전했다.

:

: 엣추노카미는 모리스에가 술만 마시고 매사냥이나 를 좋아하는 엉망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키타 가는 오래된 가문이라 훌륭한 가신을 두고 있어 부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3. 2. 구와나 화재

『가을밤의 꿈 이야기』(개인 소장)에는 아키타 모리스에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1]

메이레키 3년(1657년) 대화재 당시, 에도에 있던 모리스에는 즉시 가신 아키타 덴나이를 에도성으로 파견했다. 이때 시라카와 성주 마쓰다이라 엣추노카미(당시 시라카와 번주는 혼다 타다요시였으므로 기록 오류로 추정)는 에도성에 있었는데, 자신보다 훨씬 먼 곳에 저택이 있는 모리스에의 가신이 먼저 도착했다는 소식에 분개했다고 한다.

몇 년 후, 모리스에가 오사카 가반 임무로 교토로 향하던 중 이세국 쿠와나에 머물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쿠와나 번주는 시라카와에서 쿠와나로 전봉된 바로 그 마쓰다이라 엣추노카미였다. 마침 쿠와나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엣추노카미는 쿠와나 성 망루에 올라 모리스에 일행이 당황하는 모습을 지켜보려 했다.

그러나 모리스에의 행렬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연기를 뚫고 나아가 안전한 곳에 멈춰 섰다. 오히려 모리스에는 족경(足軽, 보병) 2개 조를 쿠와나 성으로 보내 엣추노카미에게 "성 아래에 화재가 발생했고 바람이 강해 성이 위험해 보이니, 돕기 위해 가신을 보냈다"고 전하게 했다.

엣추노카미는 평소 모리스에를 술이나 매사냥, 를 즐기는 인물로 얕잡아 보았으나, 이 일을 겪고는 아키타 가문이 오랜 명문가답게 훌륭한 가신들을 두었다며 부러워했다고 전해진다.

4. 계보

○출전: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경우, 『미하루정 사』에 근거한다.

'''부모'''



'''형제자매'''

  • '''모리스에'''
  • 여자 (오쓰) - 요절
  • 도시히사(俊久) - 동복
  • 여자 (오히사) - 신조 나오나가(新庄直長)의 아내. 동복
  • 여자 (오요코) - 우에무라 다다토모(植村忠朝)의 아내. 동복
  • 남자 (우콘) - 요절
  • 여자 (오카메)


'''정실'''

  • 쇼주인(正寿院) - 안도 시게나가(安藤重長)의 딸


'''자녀'''

  • 남자 (도타로(嫡太郎)) - 요절. 생모는 쇼주인
  • 여자 (오코코) - 이토 스케자네(伊東祐実)의 아내. 생모는 쇼주인
  • 여자 (오쓰루(於鶴)) - 요절. 생모는 쇼주인
  • 데루스에(輝季) - 생모는 쇼주인

○이하는 출생 순서 불명

  • 남자 (진쿠로(甚九郎)) - 요절
  • 여자 (오이와(於岩)) - 요절. 어머니는 모씨
  • 남자 (지로하치(次郎八)) - 요절

○이하, 출처는 『간세이 중수 제가보록』

  • 양녀: 사지 가즈나리(佐治一成)의 딸. 고이데 시게카타(小出重堅) (진타로(鎮太郎))에게 시집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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